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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아리아] 서재

뀻뀻 2021. 1. 10. 16:40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약속과 이행.

 

 

 

 

 

 

 

 

 어두운 밤이 계속 된다면, 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책을 그녀는 조용히 서재에 앉아서 읽고 있었다. 푸른 빛의 하늘을 닮은 그녀의 손가락은 책의 페이지를 문지르듯 한 번 만지고 다시 한 번 종이를 잡고 넘겼다. 작은 소파에 앉은 그 모습은 어느 귀족집 자제 못지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한 명의 기사라는 것이었다.

 

 

 「  아리아시엘 시크리시  」

 

 

 자신의 성을 버린지 언제였던가. 제 이름의 한 쪽을 자신의 검에게, 주군의 뜻을 따라 내어주었던게 언제였던가. 너무도 오래된 기억들 중 절대로 바래지지 않는 기억은 제 주군의 미소였다. 주군께 하사 받은 검에 붙은 제 이름의 한쪽은 언제나 검의 것이었다. 기사인 그녀에겐 큰 의미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

 

 당시의 그녀는 그렇게나 신념에 가득 찬, 빛나는 태양같은 이는 처음 보았다. 마치 어두운 것들은 얼씬도 못할 만큼, 내면이 차 있는 제 주군의 모습은 정말 태양이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그런 표현을 쓰면 안될테지만 그녀는 간이 크게 그런 표현을 써가며 제 주군을 칭송했다.

 

 

 감정이 없어진 인형이,

 감정이 채워진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녀의 주군은 그럴만한 힘이 있었다. 그럴 만큼, 안에 있는 것들이 넘칠 만큼 자애로웠고, 사랑스러웠고, 겸손하고, 남을 이끌 수 있는 오로지 남의 위에 서기 위한 자가 가져야 하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가진 인간. 그녀는 그런 인간의 실제를 보고 얼마나 놀라워했던지. 인형에 불과했던 자신이 그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정말 한 시도 그녀는 주군을 보고 놀라지 않은 적이 없었다.

 

 

 부드러운 미소는 누구나 맞이하는 같았으며,

 그 거침없는 신념은 모두의 여름 같았고,

 함께 하고자하는 마음은 배불리는 모두의 가을 같았고,

 낮은 자를 돌보는 행동은 온기를 나누는 겨울같았다.

 

 

 그토록이나 빛나는 이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 어두움으로만 되어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그녀를, 비교하던 그녀를 개의치않고 손을 내밀어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 준 인물. 누구보다도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싫어하는 이상향을 펼치고자 하는 자. 불가능한 그것들을 가능할 것이라고 믿게 해주는 인물이 그녀의 주군이었다.

 

 

ㅡ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던 이.

 

 

 그것이 그녀의 전부였던 사람이었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갈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은 그다지 어쩌면 다른 이들에겐 별 것 아닌 기억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그럼에도 중요한 기억들이었다. 손가락이 천천히 책장을 넘겨갔다. 옛 책의 냄새가 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고 그렇기에 이곳에서 있던 일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언제나 일정한 시간은 이곳에서 책을 읽던,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흐려진 기억.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서 있던 그녀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던 손길. 옆에서 앉아서 같이 독서를 즐기자는 그 말에도 그녀는 언제나 기사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며 이야기했다. 소파의 한 걸음 반정도 창가쪽으로 떨어져서 서 있던 자리에선 자신의 주군이 책을 읽는 모습이 잘 보여서 그녀는 싫어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기사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도,

 존경과 사랑을 바칠수 밖에 없던 존재.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만나보게 되었던 자체인 사람.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관철한 사람.

 

 그래서ㅡ..

 

 

 순간 그녀는 넘기던 손을 멈췄다. 얇은 페이지를 잡은 손이 조금 떨렸다. 무언가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소름끼치다못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ㅡ 본능적인 무언가 속이 울렁거리고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어디선가 느꼈던 감각.

 

 

 ㅡ안 돼.

 

 떠올려선 안 돼.

 

 생각해내선 안 돼.

 

기억해내선ㅡ,

안 돼.

 

 

 그녀는 약간 강하게 책을 덮었다. 강하게 본능적인 거부반응이라고 부를정도로 그녀는 얼굴이 질려있었다. 떠올려선 안된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머리를 뒤흔들었다. 마치 깨버릴듯한 느낌으로 강하게 머리에 두통이 일었다. 무언가 금기를 떠올리는 것마냥 괴로운 감각이 심장을 멈출 것 같아서 그녀는 이내 책을 품으로 끌어안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ㅡ분명, 피곤해서 그러하리라.

 

 

 다시금 스스로를 달랬다. 피곤해서 머리가 아픈 것이라면 당연한 것이였다. 숨이 막혀와서 그녀는 조용히 꼭 품에 책을 안은채 천천히 숨을 골라냈다. 가벼운 초침소리에 맞추서 일정한 간격에 맞춰 숨을 골랐다. 아무것도 떠올려선 안되는 것을 본능이 알았다. 순간순간 깊게 떠오르는 그 기억들은 정말로 흐려서 알아볼 수 없지만, 알아봐선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떠올려서도 생각해내서도 안된다면서 스스로를 지키듯 그렇게 이야기하는 자신이 너무도 나약하게 느껴지는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그것을 용인해야 될 것 같았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절대적인 금기인듯

 

깊은 수면 아래에서

떠오르는 공기방울처럼

 

방울,

 

방울,

 

아래에서 올라온다.

 

이윽고 불안감이 강하게,

ㅡ목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피곤함이 컸으리라.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못한지 며칠이 되었다.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해서 이것 저것을 해봤자 크게 푹 잘 수 없었기에 그녀는 아마 그것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숨막히는 느낌은 처음이 아닌듯 했지만 그녀가 기억하기엔 처음이었다. 품안에 안긴 양장본을 그녀는 이내 책장에 다시금 끼워넣었다. 주군이 잘 읽던 종류의 책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집어들어서 읽었던 것이기에 망가트리고 싶지않았다. 책장에 밀어넣고 다시 숨을 내쉬었다.

 

 아름다운 빛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붉게 방안을 가득 채운 노을빛이 비추는 이곳의 서재는 언제나 주군의 휴식 공간이었다. 오직 기사인 그녀와 그녀의 주군만이 있던 그 방 안의 분위기는 언제나와 같았기에 그녀는 이 장소가 좋았다. 이젠 그녀 혼자뿐인 장소라 할지라도 이 장소는 기억속 그대로였다.

 

 

 

 

 

 

 

 

만약,

정말 만약에,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게 되면

 

거짓이 정말로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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